아... 김근태 의장님 ...힘내세요!
서울대 병원으로 의원들이 집결하고 있다는데...
제발...
남은 여생...역사의 짐을 내려 놓고...
훌훌 털어 버리시고
대자유하게 보내게 도와 주세요.
다만 몇 년만이라도...
하느님, 부처님 ...
한울님께 비옵니다.
천지신명 일월성신께 비옵니다.
다만 몇 년만이라도...
두손 모아 비옵니다.
합장.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정각도원 체지체능 불도일화 구활창생
정도-중도-중용-상생
빛이 나는 자리보다는 그늘진 자리를 '잠행'하며 대통합의 산파 구실을 해왔던 김 상임고문의 입원 소식에 정치권 역시 술렁였다. 모두가 애써 말하지 않을 뿐 대개가 알고 있었던 그의 파킨슨병 투병 사실 역시 이번 일로 기정사실이 되었다. 운동장애, 떨림, 인지·기억 장애 등의 증상을 보이는 파킨슨병의 발병 이유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심한 외상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고문 피해자 중에 파킨슨병 환자가 유난히 많다고 한다.
애초 김 상임고문 측은 입원을 언론에 알릴 계획이 없었다. 입원을 예상하고 들어간 병원이 아니었다. 그는 걸어서 병원에 들어갔다. 매년 10~11월이면 연례행사처럼 '고문 몸살'을 심하게 앓던 그였다. 지인과 가족 모두 으레 몸살이 길어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11월 중순쯤 MRI를 찍었다. 뇌 정맥에 혈전이 쌓여 있다고 했다.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혈전을 용해하는 약물에 김 상임고문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쇼크가 왔다.
12월10일에는 그의 딸 병민씨의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아버지인 김 상임고문이 결혼식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별별 소문이 날 게 분명했다. 억측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반도재단 측은 그의 입원을 언론에 알렸다. 조촐하게 치르려 했던 결혼식에는 '병문안' 대신 찾아온 손님으로 북적였다.
최상명 한반도재단 사무총장은 김 상임고문이 차도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힘내라'는 말에는 '고맙다'는 말로 대답해주고, 웃어주는 등 짧지만 대화도 가능하고 인지도 한다." 현재 의료진이 가장 염려하는 것은 치료하는 동안 올 수 있는 폐렴 따위의 기관지·구강 감염이다. 누워만 있었기 때문에 경직된 근육을 키우기 위한 재활 치료도 병행해야 한다. 적어도 12월 한 달 동안은 집중 치료를 받고, 향후 6개월간도 약물 치료를 해야 한다고 최 사무총장은 전했다.ⓒ시사IN 백승기 2004년 9월19일 김근태 이사장(오른쪽)과 부인 인재근씨(왼쪽)가 자선 바자회에 참석했다.
그의 투병은 고문에서 연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1985년 9월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의장 시절 민청련이 이적 단체로 규정되면서 23일간 하루 5~6시간씩 고문을 견뎌야 했다. 여덟 차례 전기 고문과 두 차례 물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은 그 자체로 독재 정권의 무자비함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고문을 받는 과정에서 본인은 알몸이 되고 알몸 상태로 고문대 위에 묶여졌습니다. 추위와 신체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 본인에 대해 성적인 모욕까지 가했습니다." "알몸으로 바닥을 기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빌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쓰라는 조서 내용을 보고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1985년 12월19일 법정에서 김 상임고문이 증언한 내용의 일부이다. 고문당하는 내내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기 원한다'고 다짐했다. 그는 그 당시를 '짐승의 시간'으로 표현한다.
18대 총선 이후 줄곧 대통합론 주창
부인 인재근씨가 이미자의 노래 테이프 중간에 독재 정권의 악랄한 고문 사실을 녹음해 미국 언론에 전하자 이는 곧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다.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수상했고, 독일 함부르크 자유재단의 '세계의 양심수'에도 선정됐다. 어눌한 말투, 떨리는 손, 목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해 고개를 몸과 함께 돌려야 하는 불편함 등 김 상임고문의 몸에 남은 고문 후유증을 두고 사람들은 민주화운동의 '훈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재야에서 시작해 대권 주자로까지 정치적 행보를 넓혀나가는 데 그 '훈장'은 때때로 걸림돌이었다. 대중 호소력이 약하다는 세간의 지적도 고문 후유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김 상임고문을 '저평가 우량주' 정치인이라고 평가하곤 했다.ⓒ연합뉴스 2006년 11월7일 출소하는 '고문 경관' 이근안씨. 그는 한 인터뷰에서 "심문은 예술"이라고 말했다.
그의 투병이 고문과 관련 있다는 언론 기사가 나오면서, 2010년 2월 < 일요서울 > 과 가졌던 '고문 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의 인터뷰 역시 사람들 사이에 다시 논란이 됐다. 이근안 전 경감은 인터뷰를 통해 "나는 고문 기술자가 아니다. 굳이 기술자라는 호칭을 붙여야 한다면 '심문 기술자'가 맞을 것 같다. 심문도 하나의 '예술'이다"라고 말했다. 김 상임고문은 그의 '예술'로 인해 지금 병상에 누워 있다.
김 고문이 '설욕전'을 다짐하던 내년 4월 총선 가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그는 올해 초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총선에 출마할 생각이다. 내년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이루는 데 기여하고 싶고, 대선에서도 정권 교체를 이뤄 복지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하고 싶다"라고 앞으로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서울 도봉갑이 지역구인 김 상임고문은 지난 18대 총선에서 뉴라이트 계열의 자유주의연대 대표를 지낸 신지호 의원에게 1100표 차이로 분패했다. 보건복지부 장관, 열린우리당 의장, 유력 대선 후보, 같은 지역 내리 3선 의원이라는 그의 정치 경력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는 민주화운동 세력의 패퇴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김 상임고문 역시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라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민주당 수석부대변인 출신으로 김 상임고문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 유은혜 일산동구지역위원장은 안타까움으로 말을 아꼈다. "아직 출마에 대한 가부를 이야기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김 상임고문이 처한 상황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 지금과 같은 어수선하고 어려운 정치 상황에서 하실 일이 많은 분인데 입원과 투병으로 그런 부분이 희석될까봐 두렵다."
김 상임고문은 18대 총선 패배 이후부터 줄곧 '대통합론'을 주창해왔다. "정권 교체를 위해 의미 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 모든 계파를 아우르는 진보·개혁모임 결성을 주도하고 공동대표를 맡았다. "생색내지 않고, 드러내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렇지 야권 통합 논의의 물밑에 늘 김 상임고문이 있었다"라고 유은혜 위원장은 말했다.
그가 병상에 눕자, 조심스럽게 부인 인재근씨의 출마를 권유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씨야말로 '김근태의 꿈'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김 상임고문은 평소에 "나보다도 당당한 인재근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그럴 때 나는 자랑스럽다" "내가 여자로 태어났으면 인재근이 됐을 것이다"라며 아내이자 '동지'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인씨의 민주화운동 경력 역시 김 상임고문에 뒤지지 않는다. 인씨는 김 상임고문의 부인이기 이전에 여성운동가였고, 인권운동가였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으로 항쟁을 주도한 인사였다. '김근태의 바깥사람'으로 불린 것도 이즈음이었다.
2007년 한 언론 인터뷰를 보면 인씨 역시 정치에 대한 꿈이 있다. "정치권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안 했다.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하겠다. 어렵게 생각 안 한다." 민주화운동 시절부터 김 상임고문의 지근거리를 지켰던 문용식 민주당 인터넷소통위원장 역시 "의장 뜻이 있고, 하실 일이 있는데 고문으로 인한 병마 때문에 그 뜻을 다 못 이룬다면 (부인이) 충분히 출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씨의 출마 가능성을 놓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인씨가 아무리 충분한 자격이 있다 해도 "남편 대신 아내냐"라는 부정적 반응에 부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남편은 아프고, 아내는 조심스럽고, '민주화 상징'의 처지가 마냥 딱하다.
장일호 기자 /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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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고문후유증 앓는 김근태 전 장관 수년째 파킨슨병 앓아
이근안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일할 것…당시엔 '애국'"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1985년 9월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년) 의장 시절 당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전기·물고문을 받으며 '짐승의 시간'을 보낸 후유증으로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980년대 고문수사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높아지고 있다. 김 전 장관은 지난 10일 딸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1988년 12월 <한겨레>가 김근태 전 장관을 직접 고문한 '얼굴없는 고문기술자'의 실체를 얼굴 사진과 함께 처음 보도한 뒤 이씨는 11년간 도피생활 끝에 자수해 7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그런데 김 전 장관의 투병생활이 보도되면서 이씨의 행적이 다시 주목되고 있다. 트위터에서는 지난해 2월 시사주간지 <일요서울>에 두차례 걸쳐 보도된 이씨의 인터뷰 기사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이씨는 인터뷰에서 자신은 고문기술자가 아니며 "굳이 기술자라는 호칭을 붙여야 한다면 심문기술자가 맞을 것 같다"며 전기고문 등 고문수사 행위를 전면 부인했다.
"논리로 자신을 방어하려는 이와 이를 깨려는 수사관은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인다. 그런 의미에서 심문도 하나의 예술이다. 비록 나는 그 예술을 아름답게 장식하지 못했지만."
그러면서 그는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은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를 '애국'이라고 표현했다.
강제심문은 있었지만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끔찍한 전기고문은 없었다며 실체가 과장됐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김근태 상임고문에 대해서도 "건전지 2개를 이용해 겁만 주었기 때문에 고문이 아니"라며 자신의 심문은 "일종의 예술"이라고 강변했다.
김근태 전 장관 고문 사건에 대해 법원은 고문 사실에 대해 유죄를 인정해 7년형을 선고했지만 이씨는 "당시 전기고문의 실체는 내가 취미삼아 만든 모형 비행기 모터에서 뺀 AA 건전지 2개를 이용해 겁을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김 전 장관 사건과 관련해 "그의 입을 열게 할 방법으로 고안한 것이 이른바 전기고문이었다"면서도 실행한 것은 전기고문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때 김근태씨를 앞에 두고 두시간 넘게 일부러 말로 겁을 줬다. '너같은 녀석은 전기구이를 해버려야 바른 말을 한다'는 식으로 상대를 주눅들게 한 것이다. 한참 후에 눈을 가린 뒤 맨발닥에 소금물을 뿌리고 건전지 두개를 대며 계속 겁을 줬다. 이미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찌릿찌릿한 감각이 느껴지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나."
그러나 겁만 주었다는 이씨의 주장과는 달리 당시를 회고하는 김근태 고문의 진술은 고문의 악몽을 생생히 증언한다.
"소리를 지른다고 강하게 전류를 통하게 하고, 신음 소리가 나지 않도록 혀를 이빨로 꽉 물었다고 혀를 빼라며 강한 전류를 또 흘려보내고, 참으면 참는다고 또 그러고 이들의 목표는 총체적인 혼란, 착란상태로 돌입"(1987년 나온 '김근태의 이근안에 대한 기억')
"머리가 빠개질 듯한 통증이 오고 그 몰려오는 공포라니, 죽음의 그림자가 독수리처럼 날아와 파고드는 것처럼 아른 거렸습니다. 전기가 발을 통해서 머리 끝까지 쑤셔 댈 때마다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기고문은 담금질해서 뜨거운 불인두로 지져서 바싹 말라 바스락뜨리고 돌돌 말려서 불에 뛰기는 그런 것입니다. 전기고문은 핏줄을 뒤틀어놓고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마침내 마디마디 끊어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이씨는 자신은 전기고문은 물론 일체의 고문기술을 자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관절빼기' '볼펜심 꽂기' '통닭구이' 등과 같은 이씨의 전매특허로 알려진 고문기술에 대해서도 "주먹으로 몇대 쥐어박거나 유도 기술을 이용해 업어치기 정도는 했다. 이것을 고문이라고 하면 변명하지 않겠지만 그 이상의 가혹행위는 없었다"며 전면 부인했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심문이 안되면 할 수 없이 강압심문을 하게 된다"며 자신의 행위를 강압심문이라고 했다.
그는 "과거 심문과정에서 난동을 부리는 피의자 몇명을 완력으로 제압하다 팔이 빠지는 경우가 있긴 했다"면서 "아마 이런 일화 때문에 내게 '기술자'라는 호칭이 붙은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피의자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사고"라고 주장했다.
그는 공안사건 관련 인사들이 고문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 합리화 때문이라고 강변했다.
"공안사건에 연루된 인사들은 비밀 결사 등 조직에 소속돼 있다. 조사를 받은 이들 상당수는 해당 조직 기밀을 당국에 제공하는 조건으로 풀려났다. 원래 조직으로 복귀한 뒤 대접이 예전만 같겠는가. '배신자' 소리 듣지 않으려면 비밀 누설에 대한 정당한 이유를 대야 한다. 결국 '고문에 못이겨서'라는 대답이 제일 타당하지 않겠냐."
그는 또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납북어부 김성학 사건 등은 자신이 한 일이 아닌데도 "언론은 고문이란 단어만 나오면 이근안을 팔았다"면서 억울함을 호소했기도 했다.
이씨는 <일요서울>과 한 두차례 인터뷰 기사에서 오랜 도피 생활과 수감 생활 중 자신이 겪고 느낀 가족애와 부정(父情)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가족들 앞에서 나는 그저 죄인"이라며 "고문 기술자의 가족이라는 손가락질 때문에 정상적 생활이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특히 수감생활 중 세상을 떠난 둘째 아들에 대해서는 각별한 부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둘째가 아들 셋중에도 특히 착했다. 매주 면회를 오던 둘째 놈이 어느 날 '아부지, 나 오래 못 살게 될 것 같아요. 병원에서 심전도 검사를 했는데 결과가 안좋습니다'라며 침통해 했다. 평소 당뇨가 있긴 했지만 나이가 젊어(당시 39살) 설마했다. '아비 앞에서 쓸데없는 소리마라'고 호통을 쳤는데 꼭 한달만에 심근경색으로 죽었다.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또 막내아들에게 취직 자리를 알아봐주겠다고 하자 "죽어도 아버지 덕은 안본다"며 "노동판에 나가는 막내 녀석이 야속하면서도 가슴 아프다고 털어놓았다"고 이씨는 털어놓았다.
2008년 정식으로 목회자가 된 이씨는 "당연히 이근안 목사가 맞지 않겠느냐. 경감은 30년 전 직함일 뿐"이라며 현재 목사 활동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씨는 1998년 어둡고 눅눅한 천장에서 생활하다 종교에 귀의하게 됐다고 말했다. "어느 날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워졌다. 부친이 독실한 크리스찬이셨다. 자연스럽게 아버지 손때가 묻은 성경책에 손이 갔다. 이후 10년 동안 노트에 3400개가 넘는 성경 구절을 손으로 베껴 쓰며 공부했다. 자수를 결심한 것도 성경 공부 한 덕분이다. 요한 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란 구절이 있다. 이 말씀을 받아 적으며 나 역시 스스로 죄를 자복하고 회개해야 한다는 결심이 섰다."
그러나 이씨의 회개가 진정한 의미를 갖고 있을까?
그는 '시간을 돌려 과거로 간다면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일요서울> 기자의 질문에 "아니다. 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똑같이 일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시대 상황에서는 '애국'이었으니까. 애국은 남에게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자신의 과거 행적에 강한 자부심을 피력했다.
이에 대해 지난 4년간 1980년대 고문피해자의 심리상담을 통해 이근안씨를 비롯해 고문기술자의 행태를 너무나도 자세히 알고 있다는 정신과 의사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대표는 11일 트위터에 "이근안, 당신이 목사라구요? 예수가 통곡합니다"라고 분노를 표시했다.
트위터에서도 "아...교회 다니는 것을 심히 부끄럽게 하는구나"(트위터 아이디 @i***) "이런 인간이 반성이라는 것을 할 리가 없지"(@malss**) 등 격한 반응이 쏟아졌다.
김도형 선임기자aip209@hani.co.kr
김근태 고문 둘째 딸 '눈물의 결혼식'뇌정맥 혈전증 입원… 딸 병민씨, 빈자리 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서울=뉴스1) 진동영 기자 = "좋은 날인데 김 고문이 편찮아 애석한 마음입니다. 쾌유를 빕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10일 '민주화 운동의 대부'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64)의 둘째 딸 병민씨 결혼식이 열린 서울 부암동 AW컨벤션센터에서 뉴스1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이날 김 고문은 딸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결혼식을 앞둔 지난달 29일 뇌정맥 혈전증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보며 병민씨는 화장이 씻겨 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눈물을 흘렸다. 이를 지켜보는 일부 하객들도 눈시울을 붉히며 침묵을 삼켰다.
주례를 맡은 박우섭 인천 남구청장은 "김 고문이 참석하지 못한 점을 양해해달라"며 "어제 병원을 찾아 아버님(김 고문)을 뵈었는데 (자리를 못 지킨 것을) 양해 말씀 전해달라고 하셨다"고 김 고문을 대신해 하객들의 양해를 구했다.
김 고문이 앓고 있는 뇌정맥 혈전증은 뇌의 정맥이 막혀 뇌에서 나온 혈액이 심장으로 잘 운반되지 못하는 증상으로, 심하면 뇌출혈 등을 일으킨다. 김 고문은 현재 의식을 회복하고 있는 단계로 지금은 지인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등 상태가 많이 호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고문은 80년대 재야운동 당시 당한 숱한 고문 후유증과 2007년부터 앓은 파킨슨병 등으로 심신이 많이 약해진 상태다.
병민씨와 이날부터 부부의 연을 맺게 된 김동규씨는 박선숙 민주당 의원의 비서다. 김 고문은 박 의원과 재야운동 동지로 만나 20여년간 함께 움직인 정치적 동지이자 절친한 선후배다. 김 고문은 국민회의 소속이던 1995년 박 의원을 김대중 당시 총재에게 소개해 정계로 이끌었다.
한편 이날 결혼식장에는 수십 명의 국회의원을 비롯해 1000여명의 하객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손 대표를 비롯해 박지원 전 원내대표, 정동영 최고위원, 박영선 정책위의장, 원혜영 전 원내대표, 이인영 최고위원, 홍영표 원내대변인 등 민주당 의원 20여명과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노회찬 통합진보당 공동대변인 등이 참석해 축하 인사를 건넸다.
정 최고위원은 뉴스1 기자와 만나 "(김 고문 투병 사실을)얼마 전에 알았다. 가봐야 하는데…"라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유 공동대표는 하객들로 북새통을 이룬 식장 맨 뒷자리에 서서 식을 지켜보는 등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켰다.
이명박 대통령은 화환을 보내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과 권혁세 금감원장, 김병림 제주시장 등이 보낸 화환 수십여개가 식장 주변을 감쌌다.
- 2011/12/29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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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글수 : 3
12월8일 '김근태 한반도재단 이사장 입원 관련 알림'이라는 제목의 보도 자료가 이메일로 도착했다. 내용은 짧았다. 김근태 이사장(64·민주당 상임고문)이 11월29일 뇌정맥혈전증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는 것, 빠르게 회복 중이며 예후가 좋다고 했다. 그러나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료진의 권고에 따라 면회와 취재를 사양한다는 내용이었다.‘고문기술자’ 이근안 “그건 일종의 예술이었다”
덧글
독재정권에 저항한 사람은 저렇게 고문후유증으로 병상에 누워있는데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사람들에게 온갖 고문으로 씻을수 없는 고통을 준사람은 목사라며 뻔뻔하게 행세하고 있으니
지인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네요...
아...정말로...눈물이 나요...
오늘은 정신이 나가도록 술이라도 마셔야겠어요.
게다가..박혜경의 '레인'이 흘러나오네요...된장!! 된장!!!
집에서 김근태 의원이 저술한 책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고문당해가며 민주화 투쟁했다고 말만 들었지
고문이라는게 그렇게 끔찍하고 지독한것이라는걸 그책을 읽고 알았습니다
이번고비 잘넘기고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게네요